강화 마니산 일대(화도 마니산입구~마니산~마니산450봉~초피산~함허동천입구~정수사)
[ 2023. 5. 1 ]

구 간 요 강

1. 서울 - 화도면 마니산 입구 교통편
1) 2023년 5월 1일(월) 서울역 -> 김포공항역 : 공항철도
2) 2023년 5월 1일(월) 김포공항역 -> 구래역 : 김포골드
3) 2023년 5월 1일(월) 구래역 -> 화도 마니산입구 : 김포택시(23,500원)

2. 산행코스
2023년 5월 1일(월) 총소요: 4시간 12분(산행거리 : 8.99km)

화도 마니산입구~마니산~마니산450봉~초피산~함허동천입구~정수사

3. 정수사 - 서울 교통편
1) 2023년 5월 1일(월) 정수사 -> 구래역 : 카카오T 강화택시(29,400원)
2) 2023년 5월 1일(월) 구래역 -> 김포공항역 : 김포골드
3) 2023년 5월 1일(월) 김포공항역 -> 공덕역 : 공항철도

특 이 사 항

※ 2003년 8월 1일 아내와 함허동천에서 1박 야영하고 다음날 암릉을 타고 마니산을 거쳐 강화 서단 선수돈대로 하산했었는데 남은 사진이 없어져 마니산과 한 번도 가지 않은 초피산 산행을 계획한다.

산  행  길



산 행 일 지


▼ 09:48 화도면 마니산 입구 산행 시작 ~ 10:04 [331m] 참성단(塹星壇) 재현 조형물

김포 구래역에서 대기하고 있는 택시로 강화 화도면 마니산 입구로 이동하여 장비 추스리고 09:48 산행 시작

09:59 마니산 매표소에서 경로 혜택으로 무료 입장하여 10:02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리라'는 단군의 염원을 상징한 [천부인 광장]을 지나가고

10:04 [331m] 마니산 정상부에 위치한 '참성단(塹星壇)'과 '전국체전 성화 채화 장소'를 재현한 조형물을 한 바퀴 둘러본다.


▼ 11:00 [2.51km] 마니산(472.1m) 정상

10:06 등로 우측 아래로 팔각정을 가운데 두고 조성된 [신단수 쉼터]가 내려 보이고

참성단으로 오르는 '단군로 2.9km'와 '계단로 2.2km'로 갈리는 삼거리에서 좌측 '계단로'를 따라 고도를 높혀 올라가면

11:11 등로 좌측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나무꾼과 신선(神仙)의 만남]이라 명명된 대피소로 보이는 시설이 설치되어 있고

10:16 '산불조심' 이정표 선 지점에서 더워 반팔로 갈아 입고 10:19 출발하면, 곧바로 10:20 [1.23km] 포장길은 우측으로 흘러 보내고 좌측 산비탈로 오를 수 있는 계단을 따르는데 참성단은 1.1km 남았다 알려준다.

야자멍석 등로를 따라 서서히 올라가면 10:23 벤치와 평상 쉼터 조성된 공터에서 잠시 숨 고르고

가파른 경사는 돌계단으로 올라가고(氣받는 160계단)

완만한 경사는 야자 멍석 길을 따르면

10:33 [1.69km] 지붕있는 쉼터를 지나가고

오르막은 쉬지 않고 이어가는데

10:39 '마니산 시(詩)판'이 세워진 지점을 지나고서도

줄창 올라가는데 등산객들이 제법 늘어나고

10:57 참성대 통문은 '문화재 보호와 안전사고 예방'을 목적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참성대 아래쪽으로 난 좁은 등로를 따라가다 계단을 오르면

헬기장은 등산객들로 북적거리고 우측 정상부에는 줄 서 인증샷을 기다리는

11:00 [2.51km] 마니산(472.1m) 정상에 도착한다.

마니산 [ 摩尼山 ]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472.1m이다. 마니산은 강화도 서남단에 있으며 강화군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산의 정상에서 남쪽의 한라산과 북쪽의 백두산의 중앙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마니산은 마리산 또는 머리산으로도 불린다. 마리란 고어(古語)로 머리를 뜻하며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땅의 머리를 의미한다. 더우기 산 정상에는 하늘에 제를 지내는 단이 있어 강화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 민족, 전 국토의 머리 구실을 한다는 뜻이다.

『고려사(高麗史)』지리지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마리산(摩利山)으로 되어 있고, 그 후 마니산으로 바뀌었다.

우리나라 중부지방을 북동에서 남서로 달리는 마식령산맥은 서남단인 강화도에 이르러 차례로 고려산(高麗山)·혈구산(穴口山)·진강산(鎭江山)·마니산 등의 산을 형성하였다. 이들 산은 오랫동안 침식을 받아 형성된 낮은 구릉성 산지의 잔구(殘丘)이다.

마니산은 본래 고가도(古加島)라는 섬으로 바다 가운데 우뚝 솟아 있었는데, 강화도의 가릉포(嘉陵浦)와 고가도의 선두포(船頭浦)를 둑으로 연결하면서 강화도와 한 섬이 되었다고 한다.

과거 북쪽 양도면의 진강산과 동쪽 길상면의 길상산(吉祥山)은 마니산과 얕은 바다를 경계로 분리되어 있었다. 이는 과거의 지질시대에 지각 변동이나 해수면 승강운동이 조금만 일어나도 섬이 되었거나 육지와 연결되었을 가능성을 높음을 시사한다.

마니산 일대에는 선캄브리아기의 변성암 계일인 편암과 편마암이 넓게 분포하며 이른바 마니산 화강암으로 지칭되는 중생대 대보화강암이 존재한다.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북쪽 기슭에는 굳은 화강암 암반이 넓게 깔려 있는 곳이 있고, 등산로 양쪽의 노두(露頭)에서는 심하게 풍화되어 부스러지는 새프롤라이트(saprolite)와 암석 표면이 양파 껍질같이 떨어지는 박리현상(剝離現象)을 관찰할 수 있다. 또 거대한 화강암의 판상절리(板狀節理)가 곳곳에서 나타나며, 경사가 심한 산정 부근에는 화강암의 기암절벽이 솟아 있다.

현황

산정에는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를 지내기 위하여 설치하였다는 높이 5m의 참성단(사적, 1964년 지정)이 있다. 참성단은 자연석을 쌓은 것인데, 기단(基壇)은 지름 4.5m의 원형이고 상단은 사방 2m의 네모꼴로 되어 있다.

이 단의 축조연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어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으나 4,000년이 넘는 유물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그 위치나 구조로 보아 천문대나 관상대와 비슷하기 때문에 후세에 와서 이러한 용도로도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참성단에서 하늘에 제를 올렸다고 한다. 단역에는 수천 년 동안 계속 수축된 흔적이 있다. 정확한 수축 기록은 1639년(인조 17)과 1700년(숙종 26)에 남아 있다. 현재 마니산은 성역(聖域)으로 보호되어 있으며 매년 개천절에는 제전이 올려진다. 그리고 1953년 이후 전국체육대회의 성화를 매년 채화(採火)하고 있다.

마니산 산록에는 고려시대부터 형성된 여러 촌락이 있다. 북사면의 내리·문산리·상방리는 마니산을 오르는 입구에 있고, 동사면에는 사기리, 남사면에는 흥왕리, 서사면에는 장화리 등이 있다.

사기리는 지명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고려 분청사기의 가마터가 발견된 곳이고, 남쪽의 흥왕리에서는 몽골의 침입을 받아 강화도로 천도한 고려 조정이 지은 이궁(離宮)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정수사(淨水寺)는 신라 선덕여왕 때 개산(開山)한 고찰로 마니산 동봉(東峰) 중복에 자리잡고 있다. 또 마니산 서남사면에 위치한 북일장(北一場)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종마목장 중 한 곳이었다.

강화도는 고려의 개경은 물론 조선의 한양과도 가까웠고, 섬이었던 관계로 여러 차례 천도(遷都)와 몽진(蒙塵)의 땅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강화도 곳곳에 진보(鎭堡)와 돈대(墩臺)를 설치하였는데, 숙종대에 이르러서는 진보가 12개, 돈대가 53개나 되었다.

특히 마니산은 삼면이 바다와 접해 있어 주변 해안에 진보나 돈대 유적이 많다. 마니산의 서북단에는 숙종 때 만들어진 장곶보(長串堡)가 있고, 서쪽으로부터 검암돈대·미루돈대·동막돈대·분오리돈대·칠오지돈대 등이 있다.

한편 마니산 주변 해안에서는 일찍부터 방축(防築)을 쌓아 농경지를 간척하였다. 마니산 서북쪽에 위치한 내리(內里)의 가곶보와 1664년(헌종 5)에 강화도의 가릉포와 고가도의 선두포를 연결하는 선두포 둑을 쌓았다는 기록이 그 좋은 예이다. 또한 마니산 남쪽 해안은 근대적인 간척사업으로 경지를 넓혀 지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은 대표적인 지역이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니산 [摩尼山]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출입통제로 가지 못하는 참성단이 가까이 보이고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면서 펼쳐진 풍광을 감상한다.


= 북동쪽 석모도 방향 =


= 서쪽 방향 =


= 남쪽 방향 =


= 남동쪽 마니산450봉과 함허동천, 정수사 방향 =


= 동쪽 방향, 마니산450봉과 좌측 낮은 산이 초피산, 뒤편 우 길상산 좌 정족산 =


= 북쪽 진강산 혈구산 방향 =

 
▼ 11:41 [3.35km] 정수사 갈림길

동쪽 방향 뾰족한 암봉도 마니산(마니산450봉)이라는데 가야할 방향이고

주로 암릉을 지나가야 하는데

바위 군락지를 우측으로 우회해 지나면서

11:08 [2.59km] 바위 벽면에 중수한 사실을 기록한 참성단 중수비를 지나간다.

참성단 중수비 [ 塹城壇 重修碑 ]

가로 50㎝, 세로 105㎝의 크기로 1995년 3월 2일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강화군 마리산에 위치한 참성단(사적)을 중수한 사실을 기록한 비이다.

가파른 암벽면에 가로 50㎝, 세로 105㎝ 크기의 비 윤곽을 만들고 그 안에 8행 238자를 새겨 넣었다. 주요 내용은 당시 강화 유수 최석항(崔錫恒)이 관내를 순찰하다가 마리산에 올라 참성단이 무너진 것을 보고 선두포별장 김덕하(金德夏)와 전등사 총섭 신묵(愼默)에게 명하여 보수한 내용을 담고 있다.

참성단은 단군이 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올린 곳이라고 전해지는데, 고려시대인 1270년(원종 11)과 조선시대인 1700년(숙종 26)에 보수한 기록이 남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성단 중수비 [塹城壇 重修碑]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마니산450봉을 향해 진행하면 중간에 낮은 봉우리를 넘어가야 하고

봉우리를 넘어가면 마니산450봉과 좌측 초피산이, 더 뒤쪽에는 정족산과 길상산을 바라보며

최고의 경관을 맘껏 구경하며 아기자기 암릉을 유유자적으로 진행한다.

마니산450봉 마지막 오름 계단은 [칠선녀 계단]이라 하고

11:31 [3.20km] 마침내 마니산450봉 정상에 올라 선다.

함허동천이나 정수사 쪽에서 올라온 등산객들도 상당하고

여전한 암릉을 서서히 고도 낮춰 내려가면

명품 소나무 지나 데크계단으로 내려가야 하고

11:41 [3.35km] 계단 중간 쯤 우측 정수사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 12:40 [5.16km] 초피산(252.6m) 정상

상당히 가파르고 거친 경사를 조심스럽게 내려가면

바위 무더기 뒤쪽으로

11:51 [3.67km] 우측이 '계곡로' 좌측이 '능선로'인 삼거리에서 좌측 '능선로'를 따라가야 하는데 준비해간 빵으로 요기하고 12:01 출발한다.

내려가는 와중에 전망바위에 서면 동쪽 방향으로 길상산과 동검도가 조망되고

여전히 능선길을 진행하다 잠시 데크계단을 내려가면

기암괴석 경연장을 지나가고

다시 두 차례 데크계단을 내려가면

12:15 [4.20km] ㅏ자형 삼거리에서 우측으로는 '함허동천 매표소가 0.8km'라고 안내하는데, 초피산을 가기 위해선 이정표 방향 표시 없는 직진 오르막으로 진행해야 한다. 트랭글이나 네이버 지도에도 여기서 등산로 표시는 없어진다.

잠시 오르면 가양할 초피산이 가깝게 보이고 길상산과 동검도도 조망되는데

펑퍼짐 내리막을 거치면

12:27 [4.86km] 사거리 안부에서 다시 등산로 표시가 나타나고 우측(남동쪽)으로는 도자기 마을 '사기리'로 내려가고 좌측(북쪽)으로는 '덕포리' 방향인데 직진하여 초피산을 올랐다 다시 내려와 우측 사기리로 내려갈 예정이다.

예상대로 초피산 오르막은 험하고 가파른데 12:32 바위 무더기는 좌측으로 우회해 올라가야 하고

힘들어 뒤돌아 보면 마니산 일대가 조망되고 다시 거친 등로를 올라가면

12:40 [5.16km] 엉성한 돌탑 쌓인 초피산(252.6m) 정상에 도착한다.

초피산 정상에서는 조망이 없어 좌측 흔적을 쫓아 내려가면 드문드문 조망이 틔는 전망 바위들이 있어 시계 방향으로 풍광을 감상해 본다.


= 마니산 정상부와 뒤편 살짝 선수돈대[船首墩臺]에서 상봉가는 능선이 조망 =


= 선수돈대와 석모도 방향 =


= 석모도와 진강산 =


= 멀리 김포의 문수산과 드넓은 강화 들녘 =


▼ 14:00 [8.99km] 정수사 산행 종료

다시 초피산 정상으로 돌아와 12:48 오던 방향으로 출발하여 12:58 [5.58km] 사거리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등로는 낙엽 쌓인 골을 따라 희미하게 나있고

아직 부패하지 않은 고라니 사체는 독극물이 원인인 듯한데 여행하면서 로드킬 당한 고라니는 몇 번 봤지만 깊은 산중 사체는 처음 본다.

13:07 천 막 몇 동은 '강화 묘지사지' 학술발굴조사를 위해 산지사용 허가를 얻어 설치하였다 표시된 지점을 지나면

마을로 내려가는데 길상산이 살짝 얼굴을 내밀고

13:14 [6.39km] '사기리 마을회관'을 지나가다

뒤돌아 보면 내려온 초피산이 조망된다.

13:16 [6.46km] 2차선 차량 통행 포장도로를 만나 우측으로 틀어가면

13:18 사기리 마을 이름처럼 [분청사기요지(窯址)]가 안내되었고 13:20 대사마을 버스정류장을 지나가다

궁금해 뒤돌아 보면 멀어질수록 초피산(쪼삣한산) 이름 다운 초피산 형태가 나타나고

13:24 [7.06km] 우측 함허동천 입구를 지나간다.

도로 고개 마루를 지나 내려가다 13:32 [7.68km] 우측 정수사 입구에서 우틀하여 들어가면

외길 포장도로는 서서히 고도를 높혀 올라가고 희안한 구조물이 보이는데

13:48 [8.48km] '북파임무 유공자 해병상륙공작대'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는 지점을 지나가고

13:53 [8.78km] 도보로 들어갈 정수사 입구에서 우측으로 들어가면

돌계단을 올라 성곽 같은 축대 옆으로 난 평길을 따라가면

13:57 정수사 경내로 들어가고

마당 우측편에 '오백나한전(五百羅漢殿)'이 위치하고

좌측 앞쪽 동종은 방치된 듯 보이고 축대 위 나무가 범상치 않아 보인다.

가운데 대웅보전(大雄寶殿) 좌측편엔 불국사 석가탑 닮은 탑이 세워져 있고

여느 사찰처럼 뒤편으로 삼성각(三聖閣)이 보이고 좌측 계단으로 올라가면 관음전(觀音殿)이 자리잡고 있다.

아래쪽에서 범상치 않아 보이는 나무는 수령 300년 정도의 느티나무로 '큰나무'라 불리워 진다. 14:00 [8.99km] 여기서 산행을 종료하고

차량 다니는 정수사 입구로 내려가 카카오T로 강화택시 콜하여 김포 구래역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