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원미산 일대(역곡역~춘덕산~세럴산~멀미산~원미산~부천종합운동장역~춘의산~춘의역) [ 2023. 9. 2 ]
1. 서울 - 역곡역 교통편
1) 2023년 9월 2일(토) 동묘역 -> 역곡역 : 1호선(경인선)
2. 산행코스 2023년 9월 6일(수) 총소요: 3시간 13분(산행거리 : 8.54km)
역곡역~춘덕산~세럴산~멀미산~원미산~부천종합운동장역~춘의산~춘의역
3. 춘의역 - 서울 교통편
1) 2023년 9월 2일(토) 춘의역 -> 온수역 : 7호선
2) 2023년 9월 2일(토) 온수역 -> 동묘역 : 1호선
※ 이번 부천 야산을 찾은 이유는 그동안 차일피일 미뤄왔던 충남에서
계룡산 보다 더 높은 충남 최고봉 금산의 서대산과 조선 태조대왕 태실이
있는 만인산 일대를 찾기 위한 체력유지 차원에서 계획한 산행이다.
▼ 12:54 역곡역 2번출입구 ~ 13:25 [1.54km] 춘덕산(99m)
정상
1호선(경인선) 역곡역 2번출구로 나와 12:54 북진하면서 산행 시작

12:55 첫 번째 사거리에서 신호 받아 대각선 횡단보도를 건너 도로
좌측편 인도 따라 계속해서 북진하고 13:04 두 번째 사거리에서 직진
방향 횡단보도를 건너면 '삼천리자전거' 수리점에서도 직진하여야 하는데
춘덕산을 올랐다 다시 돌아와서는 좌측으로 진행해야 하는 교차점이다.

13:06 [653m] '역곡고등학교' 보이는 교차로에서 횡단보도 건넌 후
좌틀하여

주택가 포장도로 인도를 따라 서진하다 13:08 우측으로 휘어가면
비포장 도로가 이어지는데

진행방향으로 원미산 팔각정 원미정이 보이고 우측 가깝게는 춘덕산
자락이 조망된다.

13:16 삼거리에서 우측 등로를 따르면

곧바로 만나는 삼거리에서는 좌측 등로를 따르고 완만히 올라가면
좌측 개울가에는 아낙네들이 발 담그며 여유를 즐기고

통나무 계단을 따라 제법 가파르게 올라가면

13:22 [1.46km] 좌측 원미산 갈림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틀어가는데
벤치와 '향토유적숲길' 이정표가 서있고 춘덕산은 금줄을 넘어 능선길로
올라가야 한다.

오르막 경사 능선 등로를 따르면 바위 하나 보이는

13:25 [1.54km] 춘덕산(99m) 정상에 도착하면 바위에는 '춘덕산 105.6m'라
표기되었는데 마지막 산행지 춘의산 105.6m와 혼동하여 표기한 듯 하다.
춘덕산[ 春德山 ]복숭아꽃축제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 복숭아밭에서 매년 4월에
열리는 축제로 춘덕산복숭아꽃축제는 부천의 상징인 복숭아꽃을 주제로
역곡1동과 역곡2동 주민이 지역의 정체성을 이어가고, 주민의 화합과
단결을 도모하기 위하여 2002년부터 지역 축제로서 개최되고 있다.
춘덕산복숭아꽃축제는 식전행사와 공식행사,
본공연, 부대행사로 이루어진다. 식전행사는 축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풍물놀이와 함께 주민자치센터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 수강생들의 발표회가
있고, 공식행사는 대회사와 축사가 중심이 된다. 본공연은 여러 공연과
함께 직접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주민노래자랑이 벌어진다. 부대행사는
복사꽃 사생대회, 가족 건강달리기 등 주민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춘덕산복숭아꽃축제는 역곡동 산16-1[역곡로
119] 복숭아밭에서 열리고 있다. 2003년과 2004년 4월 각각 2회와 3회
행사 이후 열리지 않다가 2008년 4월 26일 제4회 춘덕산복숭아꽃축제가
개최되었다. 동 단위 축제로 역곡동 자치위원회에서 행사 두 달 전 춘덕산복숭아꽃축제준비위원회를
발족하여 축제를 준비한다. 제6회 춘덕산복숭아축제는 2010년 4월 18일에
개최되었으며, 복숭아꽃 그리기, 도자기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춘덕산복숭아꽃축제 [春德山-祝祭]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13:30 출발

▼ 14:05 [3.06km] 세럴산(108m) 정상
잠시 평탄한 등로를 진행하면 13:31 철책이 없어진 칸으로 등로는
이어가고

호화 묘지 철책 따라 등로는 계속되는데 다른 묘지를 지나면

13:35 [1.75km] 묘지로 드나들 수 있는 철문이 막아섰는데 열고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급경사를 내려가면 좌측은 주차 목적의 공터인 듯한데 우측으로 틀어가야
하고

춘덕산으로 진행했던 등로가 보이는 지점에서 좌틀하면 경작지 구획
옆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가고

운치있는 오솔길을 따르면 13:44 음식점 뒤켠으로 빠지고 되고

13:45 [2.26km] 큰 도로 만나 우틀한다.

인도 우측으로는 지나왔던 춘덕산이 조망되고

13:48 '삼천리자전거' 수리점 사거리에서 우틀하여 2차선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쌈지공원' 입구에서 13:51 우측으로 들어가고

차량통행 통제 차단기를 지나간다.

임도를 따라 서서히 올라가다 13:55 우측 나무계단을 가파르게 올라가면

멍석 깔린 오르막과 나무계단 오르막이 이어지는데

벤치 하나 놓인 봉우리에 올라서면

지도상 세럴산에는 못미치는 지점인데 세럴산으로 간주해도 무방하겠고

완만하게 올라가면

14:05 [3.06km] 지도상 세럴산은 지난 지점이나 세럴산(108m) 정상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겠다.

▼ 14:27 [3.90m] 원미산(169m) 정상
14:08 이정표없는 ㅏ지형 안부 삼거리에서 직진하고 조금 올라 14:10
삼거리에서 좌측길로 올라가면

14:12 [3.37km] 멀미산(106m) 정상에 도착한다.

14:15 출발

14:16 위아래로 갈리는 지점에서 우측 윗길로 진행하면 통나무 게단
오르막이고

14:19 [3.57km] 벤치 놓인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진행하면

편안한 등로를 따라가고 14:22 [3.74km] '네거리쉼터'라 명명된 데크
쉼터 마련된 사거리에서 '원미산' 방향으로 직진하면서

나무계단을 따라 가파르게 올라가면 정상부위는 무슨 공사중인지
가로막이 쳐저

우측으로 우회하도록 유도하였고 원미산 정상석 세워진 지점에는
데크 자재들이 쌓여있고

14:27 [3.90m] 원미정(遠美亭)이란 현판 붙은 팔각정이 있는 원미산(169m) 정상에
도착하면 팔각정을 중심으로 데크 설치 공사 중인데 바닥은 아직 데크를
깔지 않아 철골재를 따라 조심스럽게 이동하여야 한다.
원미산[ 遠美山 ]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 소사동, 춘의동, 원미동, 여월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원미산은 큰 산이라는 뜻의 멀미산, 벌응절리에서 부르는 둥근 산이라는
뜻의 둔대산과 춘덕산, 우리말의 벼락·베락·베리·벼루·별·베루
등에서 나온 말인 낭떠러지가 많은 산이라는 뜻의 벼락산 등의 이름을
갖고 있다.
<명칭 유래>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 원미산(遠眉山)은
옥산면 조종리(朝宗里)로 기록되어 있다. 원미산은 높이 167m의 산으로
용못내[龍池川]와 베리내[別仁川]의 발원지가 있다. 원미산은 멀미산,
멀뫼, 장대산, 둔대산[춘덕산]. 벼락산 등으로 불리는 부천의 주산 중의
하나이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장자봉(壯者峰)은 옥산면
표절리(表節里)에, 장좌봉산(將座峰山)은 하오정면 여월리(如月里)에
있다고 하였다. 멀미의 멀은 머리에서 나온 것으로 꼭대기·마루를
의미하며, 크다, 높다, 존엄하다 등의 뜻도 가지고 있다. 멀미산의 미는
산의 고유어로 미·메·뫼 등이 쓰였다. 그러므로 멀미산은
아주 큰 산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멀미산은 역전앞처럼 동의어 반복으로
별다른 의미가 없고, 미 역시 눈썹 미(眉)든 아름다울 미(美)를 쓰든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성주산(聖柱山)과 원미산(遠眉山)이
일제가 측량을 하면서 임의적으로 지은 지명으로 여겨진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일제는 1894년(고종 31)에서 1906년 사이에 군사용 지도를
제작하기 위해 육군성 참모본부 소속의 첩보 장교들로 조직된 측량대를
한반도에 몰래 들여 와 은밀하게 측량을 하면서 그때그때 편의를 위해
전국 곳곳에 무수하게 지명을 새로 만들었는데, 성주산과 원미산 등도
이때 생긴 지명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원미산 아래 수백 년 동안 세거하고
있는 여러 문중의 족보에서 원미산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기에,
일제가 1913년에 측량을 하고 1915년 지도의 제판을 할 때 ‘원미산(遠美山)’으로
표기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지명총람』[1985]에는 “둔대산(屯垈山)[산]
멀미산; 멀뫼[산] 멀미산; 멀미[산] 멀미산; 멀미산[산] [멀미, 멀뫼,
원미산, 장대봉, 장자봉, 둔대산]; 원미산(遠眉山)[산] 멀미산; 장대봉(將臺峰)[산]
멀미산; 장자봉(將者峰)[산] 멀미산” 등 멀미, 멀뫼, 멀미산을 기반으로
하는 지명을 열거하고 있다. 이를 볼 때 원미산은 일제가 임의로 만든
지명이 아니라 당시 부르던 이름을 한자로 옮겼다고 볼 수 있다. 1913년에
측량을 하고 1915년 제판을 마친 지도에도 일본어로 멀미라 쓰여 있다.
『부천사연구』[1993]에는 멀미를 벼락산이라
하였다. 벼락이 많이 쳐서 유래하였다는 해설도 붙어 있지만 이는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일 뿐 근거가 없다. 사실 벼락은 벼랑을 뜻한다. 옛 우리말에서
벼락·베리·벼루·별·베루 등이 낭떠러지의
의미로 쓰였다. 그러므로 벼락산은 벼랑을 이룬 산이라는 의미이다.
『부천사연구』에서는 또 원미산에 대한 지명
유래를 다음과 밝히고 있다. “옛날 부평부 관아의 동헌에서 이 산을
보면 정통으로 바라보이는데 아침 해돋이 때의 산세는 그지없이 선연하고
아름다우며 저녁 노을에 반사된 그 푸르름은 단아하기가 비길 데 없었다.
더욱이 부천벌을 굽어 감싸는 듯한 정경이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멀리서
바라본 산 풍경에 누구나 감탄하였다 한다. 이에 도호부사가 산의 이름을
물었으나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자 부사가 그 즉시 산 이름을 원미산이라
하여 오늘날까지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 지명 유래에 대한 근거는
찾아볼 수 없다.
<자연환경>
원미산의 최고봉인 장대봉에서 바라보면 인천의
계양산이 가깝게 다가오고 뒤쪽으로 할미산이 가까이 있다. 멀리 보이는
김포의 한강 줄기는 희미하게 보인다. 멀미는 제1봉우리로 장대봉이
우뚝 솟아 있고, 제2봉우리 멀미봉이 소사동 방면에 솟아 있다. 제3봉우리로
장자봉이 있지만 서울남부터미널로 통하는 춘의로를 뚫어 봉우리가 송두리째
잘려 나간 상태이다.
산이 높지 않기 때문에 주요 식생은 낙엽활엽수림이고,
높은 산에서 자라는 상록수나 침엽수림은 보기 힘들다.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이후까지 벌거벗은 산을 녹화한다는 명목으로 많이 심은 아까시나무가
많아 아카시아꽃이 유명하였다. 또한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들이 활짝
피어 진달래 축제와 철쭉제가 부천에서 유명해진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현황>
2010년 이후로 여러 개의 생태문화 둘레길이
조성되어 시민들의 건강과 레저 활동에 기여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원미산 [遠美山]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14:35 출발

▼ 15:01 [5.41km] 부천종합운동장역 3번출입구
조금 진행하면 운동 시설 설치된 지점도 데크 쉼터 공사 중인데 '원미산
스카이라인 정비공사'란 프랭카드가 걸려있고

완만히 내려가면 가파른 통나무 계단 내리막이 이어지고

널찍한 등로를 내려가는데 자재를 싣고 올라오는 중장비를 피해 등로를
벗어나야 하고 14:41 [4.28km] 삼거리 안부에서 직진하여 잠시 오르면

14:43 [4.38km] 여러갈래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가파르게 내려가야
한다.

공사중으로 바닥이 고르지 못한 내리막에서 진행 방향으로 '부천종합운동장'이
내려 보이고


데크 계단을 따라 '부천종합운동장'으로 내려서 좌틀하는데 운동장(축구장)안에서는
부천FC 축구시합 전 응원 소리가 떠들썩하고 14:53 운동장 빠져 우틀한
후

곧바로 횡단보도를 따라 8차선 대로를 건너가 우틀하면

사거리에서 좌틀하고 신호를 받아 횡단보도로 대로를 건너도 되는데
15:01 [5.41km] 부천종합운동장역 3번출입구로 지하로 내려가

4번출입구로 빠져 나온다.

▼ 15:45 [7.28km] 춘의산(도당산 105.6m) 정상
15:06 [5.68km] '오성 장미수목원' 입구에서 좌측으로 들어가면

공사로 마땅한 길을 찾자못하여 잡목을 헤치며 포장 이면도로로 내려가는데

좁은 2차선 포장도로에 차량들이 연이어 지나가고 도로 반대편쪽
비탈을 올라가도 공사 중이어

잠시 헤매다 마을이 보이는 널찍한 임도를 따라 숲을 향해 서서히
올라가다

15:20 [6.34km] 능선에 붙어 좌틀하면

정상 등로를 만나 고도를 높혀가고

한바탕 가파르게 오르면 15:28 좌우로 흐르는 등로를 만나 우측으로
진행하고

15:30 널찍한 등로를 만나 좌측으로 틀어 올라가는데 좌측 춘의정에
올랐다 다시 돌아와 우측으로 내려가야 하는 지점이다.

15:31 [6.73km] '춘의정'이란 한글 현판 걸린 멋진 망루형 팔각정에
도착하고

15:35 오던 길로 되돌아 내려가면 15:38 어린이에게 과학적 상상력을
키우게 하는 처음 본 놀이 시설 설치 지점을 지나가고

15:40 포장길을 만나 우틀하여 잠시 오르면 15:41 '도당배수지'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배수지 시설은 안보이고 '부천 천문과학관' 건물이 보이고 주변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우측편 데크 통로를 따라 더 들어가면 15:43 철책 시작되는 지점에서
바깥쪽으로 나가

철책 따라 능선 등로를 올라가게 되고 큰 바위를 봉우리에 올라서면

15:45 [7.28km] 춘의산(105.6m) 정상에 도착하는데 춘의산 대신 도당산이라고
표기되었다.
도당산[ 陶唐山 ]
「경기도
부천시의 도당동과 여월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도당산은 와우산(臥牛山)이라고도
불린다. 산의 지형이 누워 있는 소와 같다고 하여 조선시대부터 와우산
또는 우산(牛山)이라 불러 왔다는 기록이 있다.
<명칭 유래>
도당산은 해발 106m에 이르는 산이다. 도당산
일대는 수백 년 동안 전주이씨 효령대군파 사직공 종중의 종중산으로
사용되었는데 ‘와우산’으로 기록하는 기록이 많아 와우산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일성록(日省錄)』의 1796년(정조 20) 9월 17일
조에 부평의 척후소(斥候所)로 기록된 와우봉(臥牛峯)이 보이며 『전주이씨
효령대군정효공파세보』[1957, 1983]를 보면 와우산에 대한 기록이 다수
보인다. 전주이씨 효령대군정효공파 16세손인 이근영(李根榮)[1831~1873],
18세손 이기백(李起百)[1891~1938], 19세손 이강국(李康國)[1915~1934]
등의 묘소가 와우산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종중회에서 제사를 담당하는
이을재(李乙宰)[1956]는 종중의 묘소가 있는 종중산이 와우산이라고
하였다.
또한 『부천사연구』[1992] 에서도 “와우산-춘의산을
일명 와우산이라고도 했는데 이는 산세가 마치 큰 소가 누워 있는 형상과
같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춘의산 서쪽 골짜기는 ‘우산방죽골’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중략] 이것은 내동 전주이씨 사직공종 후손들의 종중산으로
매년 10월 시제를 지내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한편, 『부천의 땅이름 이야기』[2001]에서 “도(陶)는
본래 도(徒)에서 나온 말로 ‘물’을 뜻한다. 이 도(徒)가 질그릇 도(陶)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당(唐)이라는 말은 당나라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둑’이라는 말이다. 도당이라는 땅이름은 물가에 막아 놓은 둑을 의미한다.
이 둑이 삼한시대 이전에는 성(城)으로도 쓰였다. 따라서 도당산이란
물을 막아 둑처럼 생긴 산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여 도당산의 명칭
유래를 소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지역의 본래 지명이 도당리(陶唐里)였기
때문에 도당산으로 불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자연환경>
주봉은 매봉이고 머리에 해당하는 봉우리가 춘의봉, 혹은 춘의산이다.
<현황>
부천 지역 사람들은 대부분 ‘도당산’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본래
이름이 ‘와우산’이라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도당산 옆에
있는 춘의산을 춘의봉으로 불러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2022년 현재
도당산에는 도당근린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도당산 [陶唐山]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15:48 오던 길로 되돌아 출발
▼ 16:07 [8.54km] 춘의역 8번출입구 산행 종료
다시 '부천 천문과학원' 공원으로 돌아와 포장길을 따르다 15:52
삼거리에서 포장길 따라 직진하는데 좌측은 춘의정에서 냐려왔던 등로이고

15:54 도로를 거치지 않고 '부천 천문과학관'으로 가파르게 질러가는
데크 계단 지점을 그대로 지나가면

주택가로 빠져나와 15:59 좌측으로 틀어 진행하면 산업단지 건물
사이 도로를 따라가게 된다.

16:05 [8.39km] 10차선 대로를 만나 우틀하면 서진하게 되고 잠시
인도를 따라 진행하면

16:07 [8.54km] 춘의역 8번출입구에 도착하여 산행을 종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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